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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욕망을 창조하라 - ‘프로파간다’

욕망을 창조하라 - ‘프로파간다’(퍼온 글-출처 http://wiredhusky.tistory.com/)

 

 

표지의 저 사진 한 장으로 버네이스는 흡연을 현대 미국여성들의 자유의 상징으로 만들어 버렸다.- 담배회사들을 위하여.

 

이전의 홍보가 '값싸고 맛 좋은 베이컨을 사드세요'였다면 버네이스의 홍보는 보다 간접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우선 신뢰성 있는 의사를 확보한다. 그런 다음 의사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선 올바른 식습관이 필수다. 특히 아침이 중요한데, 매일 아침 섭취하는 풍부한 단백질이야 말로 무병장수의 근원이다'. 버네이스는 커피와 토스트 일색이던 당시 미국인들의 아침 식사를 모조리 베이컨과 달걀로 바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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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Propaganda)'라는 말은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 '신앙 선전실'이라고 번역되는 가톨릭교의 부서 이름에서 유래했다. 1622, 당시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프로테스탄티즘 세력을 억제하고자 로마 교회에 '신앙 선전실'이라는 이름의 선교 부서를 개설했던 것이다.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역시 1차 세계대전, 인간의 욕망과 협잡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던 20세기 초였다.

 

미국은 원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미합중국의 대선 후보 우드로 윌슨이 '승리 없는 평화'라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막대한 권력과 이권이 걸려 있는 전쟁, 그것도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최초의 빅 마켓을 어찌 미국이 가만 두고 볼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참전을 결정했다. 이제 미국은 참전에 걸림돌이 되는 한 가지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반전을 외치던 국민들을 어떻게 전쟁광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가 필요했다. 미국은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 선전 기관을 설치했다.

 

태생은 고귀했으나 성장이 비천했다. 전쟁이 끝나자 타락한 선전을 입양한 것은 기업들이었다. 경영자들은 선전이 전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과에 주목했다. 그들은 선전이 미국 국민을 전쟁광으로 만들었듯이 소비자의 기호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객을 최면에 걸어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였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이 같은 시대의 요구에 영웅처럼 응답한 선전계의 선구자였다. 특히 그는 선전에 노출된 사람이 그것이 선전인지 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은밀한 선전술의 창시자였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며,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론을 현실세계에 가장 잘 반영한 영리한 천재였다.

 

버네이스는 군중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의 열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그 열 사람의 생각대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집단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물건을 고르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책을 보거나.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한다고 믿지만, 천만의 말씀. 당신의 취향은 철저히 강요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화뇌동하는 군중들을 이끄는 것은 누구일까? 연예인, 의사, 변호사, 고위 관료, 기업의 최고위 임원, 이른바 공인이라 불리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바로 그들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드라마 주인공들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고 열심히 그들의 의상을 협찬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들에게 수많은 대중을 이끌어 갈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전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선전의 무서운 점은 심지어 선전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조차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다. 신자유주의와 물신만능주의, 지나친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젊은이들은 유행을 거부하고 공정 무역을 주장하며 대량생산과는 거리가 먼 개성 있는 '상품'에 눈길을 돌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길들여 지지 않은 야생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누구인가?

 

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존의 상업은 반대급부마저 모조리 포섭할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선전은 기존 상업의 퇴폐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그것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충동질한다. 이 세계는 잘못 되었다. 우리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보자. 이렇게 해서 체 게바라의 사진이 박힌 커피잔과 티셔츠가 팔리고 DIY 가구 붐이 일어난다.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몇몇 수입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홍대를 중심으로 수공예품 시장이 형성된다. 자유와 개성을 되찾는 싸움? 그것이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우리는 평생을 가도 알지 못할 것이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대중이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조종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권력자들의 목표는 대중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좀비로 만드는 것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런 세상을 개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점을 철저히 활용하려 든다는 점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선전론은 너무나 불쾌하고 화가 난다.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뿌려 놓은 선전의 씨앗은 결국 히틀러를 만들어냈다. 그 누구보다도 선전의 위력을 알고 있던 히틀러는 나치를 위한 선전기구 책임자로 에드워드 버네이스를 영입하려 했다. 비록 그는 거절했지만 그에게 영감을 받은 히틀러는 라디오 연설과 정치 영화로 대중을 선동하는데 성공했고, 그리고는 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세상은 깜짝 놀랐다. 생뚱맞게도 심리학 교수였다. 경제학 이외의 학문을 연구한 교수가 상을 받은 것은 1969년 노벨경제학상 제정 후 처음이었다. 수상자의 이론도 파격 그 자체였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명제를 뒤엎고 인간이 매우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펼친 그의 이론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인간을 이성적인 판단을 지닌 주체,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본 여느 경제학자들과 달리 심리학자인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통해 경제 현상을 풀어내려고 했다. 또한 경제학이 비경험적인 과학, 즉 자연과학과 달리 연구실의 실험을 통해 입증하거나 해결 방안을 찾을 수는 없는 학문이라는 기존 통념도 완전히 허물어뜨렸다. 정통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이유와 경로를 탐구하다 그가 창시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이 결합해 태어난 일종의 퓨전 학문이다. 경제학계보다 먼저 이 퓨전 학문을 지지한 세력은 금융시장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자본시장 종사자가 합리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집단적 광기나 손실회피 심리 등으로 어처구니없는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월가 경영진이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행동경제학과 카너먼 교수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오늘날의 히틀러들은 군대와 의회가 아닌 기업과 언론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 그들은 더욱 막강해졌고 우리는 보다 더 약해졌다. 우리가 그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5년이나 10년 뒤에도 우리의 세상이 이 질문에 답 할 수 없는 세상이 될까봐, 너무나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