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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시대를 추억한다 詩의 시대를 추억한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사서 읽은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다. 기껏해야 아침 저녁 전철 플랫폼에 적혀있는 시민공모작을 건성으로 보거나, 더러 SNS에 포스팅 되는 시를 가끔 읽는 정도가 되었다. 한 시절 가방에 늘 시집 한 권쯤은 담고 다녔고, 족히 수백 권 넘게 시집을 사 모으던 사람이 이 지경이니, 이 시대의 시인들은 밥은 먹고 사는지? 그래도 영영 잊은 것은 아니어서, 최근에 재북시인 백석을 발견한 것을 위안이라 해야겠다. 시문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딩 입학 후, 개성 넘치는 국어선생님 두 분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한분은 홍석원 선생(필명 홍강리), 대학시절 문단에 데뷔한 시인이셨다. 노래로도 알려진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하면 아실만한 ..
수호지에서 묵향까지 '수호지’에서 ‘묵향’까지 (신조협려의 소용녀 싱크로율 100%, 유역비) 이글은 순전히 무협 덕후들과 무협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나누고자 작성합니다. 내가 무협의 세계에 들어선 것은 고1 때, 삼국지와 수호지의 영향이다. 이때부터 만화가게에서 대만의 와룡생, 고룡, 양익의 해적판과 위작들을 빌려 보기 시작하여, 3세대 신무협 ‘묵향’까지 꾸준히 섭렵하였다. 고딩 때 읽은 한국작가들의 무협지들은 도색잡지 수준의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가 또 하나의 재미였다 (결국, 그런 식의 선정적 경향 때문에 몰락하지만). 대학 시절 학교 앞 ‘모심만화’는 만화/무협 마니아들의 휴식처였다. 임모, 권모 선배와 친구들이 자주 가던 곳이다. 물론, 당시 순차적으로 출간 중이던 황석영 선생의 ‘장길산’과 이현세/박봉성의 극화들을..
이소룡에서 견자단까지 이소룡에서 견자단까지 내가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1973년, 초등 3학년 때였다. 어느 여름 밤, 옆 동네 사촌형님들을 따라 십리 길을 걸어 읍내 극장에 갔었다. 그때 세상에 나와 처음 본 영화가 ‘흑연비수’, 홍콩 무협영화였다. 무협영화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특별한 행운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시골에서 영화를 보는 기회는 마을 공회당 앞에서 일년에 한번 상영하는 반공영화가 전부였다. 다행히, 4학년 무렵부터는 집에 TV가 생기긴 했지만. (이런 연유로 70년대 초반의 검객영화들과 왕우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다시 영화를 접하게 된 건, 1978년 중학교 2학년 때 청주에서 하숙을 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학생들에게 극장출입이 허용되는 날은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하는 ..
문학, 나의 취향 어린 시절부터의 내 평생의 취미는 단연 독서와 영화보기이다. 좀 자랑삼아 말하자면, 어린 시절 시골학교의 문고에 있는 책들을 다 읽어치우고는 더 읽을 게 없어 누이들의 중고등 국어교과서와 사촌 형님이 구독하는 '선데이 서울', '주간 경향'까지 두루 섭렵했다. 몇 년 전부터 급격히 안력이 약해지면서, 책읽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제는 책을 보려면 돋보기안경을 써야 하는 처량한 나이가 되었다. 전에 직장생활 할 때, 보고서 글자 폰트를 큼직큼직하게 해야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책읽기와 영화 취향도 바뀌어 간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 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쪽으로. 젊은 시절의 지나친 독서 편식의 반작용인지, 아니면 생각이 점점 얕아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누..
귀항 흐린 근경의 섬들이 어둠을 끌어 안으며 초여름의 긴 하루를 마치고, 바다로 나갔던 어선들이 저 마다의 항로를 끌며 늦은 항구에 돌아오면 또 얼마 만큼의 그리움이 빈 해안에 떠밀려오는가. 등대, 내 고단한 희망의 별이여. 꿈꾸지 않는 해안에서 너는 밤을 새워 눈부신 희망을 흩뿌리는데, 멀리서 오는 스산한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그리운 이의 귀항을 나는 기다린다. 등대여.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서는 안된다. 남겨지는 일이 떠나는 것보다 몇십배, 몇백배 아름답고 힘겨움을 아는가. 그리운 이여. 그대 미망의 그물을 거두지 못하고 먼 길을 서성이는 이여. 머리 위로 잔별 스러지고, 새벽하늘 너머로 꿈결처럼 아득하게 예인선 불빛 가물거린다.
퇴계원에서 늦여름의 퇴계원에는 물새가 날지 않는다. 겹겹이 늘어선 가로수 너머로 별 뜨지 않고 투명한 어둠, 혹은 황혼의 긴 그림자 안개처럼 무겁게 어깨 위에 내릴 뿐. 무성한 포프라 서걱이는 흐린 의식의 한 때를 한줄기 소나기 날카롭게 횡단하고 내가 내미는 손 너머로 완행열차 달려간다. 고단한 항해을 끝내고 이제. 그대와 나는 손을 흔들며 명료한 비애의 시간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늦여름 장미의 아득한 향내 너머로 그대와 나의 길고 긴 사랑노래를 흩어 버리고 결별과의 굳은 악수를 나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떠나 보내기 위하여 날마다 여름꽃 흐드러지게 피는 늦여름의 퇴계원에서 그대와 나는 손을 흔든다.
겨울 희망 눈보라 속에서 꿈꾸었네. 엉겅퀴 마른줄기 황무지의 끝으로 손 흔들 때, 우리 절망의 상공으로 떠오르는 꽃송이. 눈보라 속에서 핏빛으로 찬연하게 타오르는 꽃송이. 차가운 바람 대지를 핡퀴고 갈대들 사납게 울부짖으니 그대에게 가는 길 더욱 찾을 수 없어 우리의 꿈은 참혹하여라. 그러나, 귀 기울이면 언땅 깊은 곳에서 오랜 그리움의 꽃씨 움트는 소리 꽃씨 깨우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눈보라 속에서 꿈꾸었네. 참혹한 꿈의 문의 열고 그대 기어이 돌아와 잔설 드리운 들에 화사하게 꽃피우는 꿈.
1985년 베이루트, 서울 아직도 베이루트의 거리에는 넝쿨장미가 피고 있을까. 철거민들의 천막에선 잡혀간 아빠를 기다리는 계집아이의 기도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난민선 주위를 떠다니던 지중해의 갈매기떼는 철거민들의 가난한 꿈속으로 떠밀려와서 어느 아파트 옥상 위에 집을 짓는가. 황해의 눈발을 휘몰아오며 북서풍은 밤새 천막 위에 울고 얼어붙은 하늘이 와르르 와르르 내려 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