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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등 / 김광균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울로 어데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 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여름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형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서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를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