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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시모음

헬리콥터/김수영

헬리콥터

 
                                 김수영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1950년 7월 이후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은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아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지만 린드버어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 안에 느끼고야 만다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우리는 좁은 뜰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서부터라도 내어다볼 수 있고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을 
헬리콥터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 자유 
―― 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게 
손을 잡고 超동물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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