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시대를 추억한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사서 읽은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다. 기껏해야 아침 저녁 전철 플랫폼에 적혀있는 시민공모작을 건성으로 보거나, 더러 SNS에 포스팅 되는 시를 가끔 읽는 정도가 되었다.
한 시절 가방에 늘 시집 한 권쯤은 담고 다녔고, 족히 수백 권 넘게 시집을 사 모으던 사람이 이 지경이니, 이 시대의 시인들은 밥은 먹고 사는지? 그래도 영영 잊은 것은 아니어서, 최근에 재북시인 백석을 발견한 것을 위안이라 해야겠다.
시문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딩 입학 후, 개성 넘치는 국어선생님 두 분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한분은 홍석원 선생(필명 홍강리), 대학시절 문단에 데뷔한 시인이셨다. 노래로도 알려진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하면 아실만한 분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분은 임찬순 선생, 희곡작가로 데뷔하여 지방극단에서도 활동하셨고, 당시 지방지에 소설을 연재하시는 분이었다.
고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었지만, 모더니즘 계열의 깔끔하고 도시적인 시가 좋았다. 사춘기 소녀라면 누구나 한번 읊어보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김광균의 ‘와사등’과 청마 유치환의 ‘깃발’과 ‘바위’. 이런 류의 시를 좋아했다.
외국시로는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가을날’과 ‘장미’, 로뜨레아몽과 칼릴 지브란을 읽었다. 보들레르는 아는 척 할려고 좀 읽었다.
대학에 입학하니, 시의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80년대는 시문학의 시대, 한국문학사상 최고의 시인들이 대거 출현하여 활약하던 시대이다. 암울한 시대, 문학가들에게는 느긋하게 긴 호흡의 소설을 쓰는 것 조차 사치로 느껴졌나 보다. 그러므로, 달콤한 사랑노래를 부르는 시인도 없었다.
김수영과 신동엽으로 시작하여, 당대의 시들로 넘어갔다. 광주항쟁의 피맺힌 역사는 시인들에게 에둘러 표현할 틈을 주지 않았으니, 김준태는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울부짖듯이 직설적으로 노래했고, 양성우는 5월 영령들을 추모하여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썼다. 금서가 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과 남민전사건으로 투옥 중이던 김남주의 시집은 알음알음으로 복사본을 구해 읽었다.
조금 호흡을 가다듬고 읽을 수 있었던 시는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 (요즘 아이들 국어교과서에 정호승의 시가 실린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시인은 황지우였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 외에도 대부분의 시집을 사들였다. 그의 시는 유니크한 언어를 구사하여, 시대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살아있으되 너무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모두가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으므로.
이 정도로 80년대 전반기를 정리하고 넘어 가기엔 섭섭해 하실 시인들이 많겠으나(만일 이글을 본다면 말이지만), 전문적으로 문학사를 정리하는 것도 평론을 쓰는 것도 아니니, 대략 그 시절 좋아했던 시인들의 이름 만 나열해 본다. 신경림, 고은, 조태일, 이성부, 이성선, 정희성, 박남철, 하종오, 곽재구, 도종환, 고정희, 강은교, 최승자, 김광규, 김명인, 문병란, 김정환, 오규원, 황동규, 최하림, 기형도,...
8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오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유형의 시를 쓰는 시인들이 등장한다. 산골 초등학교 교사인 김용택의 ‘섬진강’, 발랄하지만 긴장감이 넘치는 장정일의 ‘햄버거에 관한 명상’과 유하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유하는 나중에 영화감독으로 변신하여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최영미의 조금은 시니컬한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이다. 말랑말랑한 서정시 '홀로서기'로 대중에게 어필한 서정윤은 얼핏 넘아가자. 이 무렵에 나의 시문학에 대한 흥미도 시들해진다.
소설분야를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이문열이 문제작가로 날리고 있었고(헐~),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 나중에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베스트셀러였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바스콘 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운동권 대학생들의 입문서 구실을 하기도 했다.1981년 연재소설이 군부정권의 비위를 건드려 필화사건으로 번진 한수산, 지금은 작품세계가 달라진 박범신 등이 인기작가였다. '인간시장'의 '다혜'와 '풀잎처럼 눕다'의 '은지'는 이전까지의 한국소설에서 볼 수없는 캐릭터여서 기억에 남는다.
'난쏘공'에 대한 추억 하나. 대학입학 후, 독서토론하는 써클(요즘말로 동아리)인줄 알고 가입한 써클에서의 첫 세미나 주제가 '난쏘공'이었다. 이책은 물론 고딩 때 읽었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는데, 이게 웬 걸? 문학토론이 아니라 사회현실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펼쳐지는 거다. 무슨 도그마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을 써가며 같은 신입생들조차 무척 진지하게 노동과 사회 현실에 대해서 논지를 펼치는 데,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내 고향친구들 사는 게 그렇지 않아.' 이거였다. 그렇게 책으로 사회를 배웠던 서울 아이들 대부분은 2학기 쯤 되니 써클을 탈퇴하고 도서관으로 부지런히 공부하러 갔다. 나같이 뒤늦게 깨우친 촌놈들이 운동권에 남아있었다.
물론, 빼어난 소설이 완전히 죽어있던 건 아니다. 황석영선생이 '장길산'을 집필하고 있었고, 조정래선생도 문예지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고 있었다. (대중에게 널리 읽힌 건 나중에 소설로 출판된 이후이긴 하지만.). 만일 '태백산맥'이 영어나 불어로 쓰여졌다면, 벌써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으리라.
이후로는 뜨문뜨문, 류시화의 잠언시나 함민복의 시를 인터넷으로 보는 정도가 되었다.
다만, 최근의 신선한 발견은 30년대의 숨겨진 시인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눈 내리는 날 한번 읽어 보시라.
시인과 시에 대한 나름의 평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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