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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조선 선비들의 섭생법

 

조선 선비들의 섭생법

 

언젠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섭생법에 관한 글을 보다가, 순전한 호기심으로 조선 대표 유학자들의 생몰연도를 검색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는데 조선 선비들이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장수한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래 명단은 제가 임의적으로 장수한 분만 골라낸 것이 아니라, 조선성리학 계보를 보고 대표적인 학자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물론, 성삼문이나 조광조 같이 천수를 누리지 못한 분들은 빼구요.)

 

정인지 1396~1478 (82)

황 희 1363~1452 (89)

서거정 1420~1488 (68)

김종직 1431~1492 (61)

서경덕 1489~1546 (57)

이언적 1491~1553 (62)

조 식 1501~1572 (71)

이 황 1502~1571 (69)

기대승 1527~1572 (45)

성 혼 1535~1598 (63)

이 이 1537~1584 (47)

김장생 1548~1631 (83)

송시열 1607~1689 (82)

 

열세분의 평균수명이 68, 기대승과 이이, 서경덕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갑을 넘겼고, 80세 이상 초장수한 분이 무려 네 분이나 되더군요.

 

16세기~19세기 양반계급의 평균수명이51~56, 역대 왕 26(단종 제외) 평균수명이 47세인 점과 비교해보면 유학자들의 평균수명에는 분명 다른 사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벼슬을 탐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거사로서의 삶을 산 선비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고 보여 집니다. 뭐, 이렇게 사는 데도 어느 정도는 가문의 재물, 소작인과 노비들의 수고가 받쳐줘야 했겠지만 말이지요.

 

하였튼, 장수 가문의 특징은

첫째, 청렴하게 살며 절제하는 가풍. 둘째, ‘양생법 (도인술, 양인술)'의 생활화. 셋째, 의학지식.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이 으뜸인데, 젊은 시절 잠시 출사했던 퇴계 이황과 벼슬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던 남명 조식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바른 생활습관도 중요한데 바른 마음과 몸 가짐, 검소한 생활자세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 됩니다.

 

18세기 같은 서얼 출신으로 이덕무와 절친했던 북학파 학자 성대중의 청성잡기 중 한 대목.

 

 

體欲常勞 心欲常逸

食欲常簡 睡欲常穩

攝生之要 無過於此

 

몸은 늘 수고롭게 하고, 마음은 항상 편안하게 한다.

음식은 늘 간소하게 하고, 잠은 항상 편안하게 한다.

섭생의 요체는 이것을 벗어남이 없다.

 

 

가 강해야 건강 장수하니, 선비들은 도인법’(양인술)을 익혀 호흡법과 기체조를 생활화 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정신력과 집념의 원천도 역시 샘솟듯 솟아나는 에서 나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힘든 귀양살이를 오래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그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도인법은 퇴계 이황이 남긴 활인심방(活人心方)이 유명한데요.

퇴계 이황이 명나라의 서적을 번역하고 내용을 덧붙여 장수 비결과 건강 수련법을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의 열여섯 번째 아들이었던 주권은 자호가 현주도인 함허자로 만년에 도교에 뜻을 두어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이중 활인심방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활인심방은 상하 권 으로 나누어 있는데 주로 상권의 도인법을 활용합니다. 야사에는 퇴계의 절륜한 정력에 대한 얘기도 전해 지는데, '낮퇴계와 밤퇴계는 달랐다.'하며 요즘 말로 '낮져밤이'의 표본이었다고 하네요.(믿거나 말거나.하하)

 

활인심방 외에도 가문마다 전래되는 양생법이 있다고 합니다.

 

의학지식도 선비들의 필수교양.

대부분의 선비들은 오랜 공부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었고 자신의 질병이나 가족들의 질병을 직접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선비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의학입문(醫學入門)’이라는 한의서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의학입문은 명나라의 이천(李梴)’이라는 유학자이자 한의사인 분이 저술했는데, 단순히 입문서가 아닙니다. 기초 이론과 생리, 병리, 진단, 약물을 비롯하여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피부과 등의 각종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이 있는 종합 임상의서입니다. 특히 선비들이 공부하기에 편리하도록 한시체(漢詩體)로 되어 있지요. 의학에 관심이 많아 의서를 깨우쳐 의술에 조예가 깊었던 분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분들을 유의(儒醫)’라고 합니다. 유학자이면서 의사인 것이죠.

 

중산층 이상의 선비 집안에서는 약장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유의 집안에선 중병이 아닌 경우에 집안 어른이 한약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한약재를 상비해 둬야 했기에 약장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죠. 특히 허준의 [동의보감]이 편찬되어 나오면서 약장은 선비 집안의 필수 목가구가 되었습니다. 선비들이 당쟁으로 유배를 떠날 때도 반드시 지참해 갔던 물건이 바로 약장이었다고 합니다.

 

 

[이규경의 섭생과 양생론 (발췌)]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규경(圭景, 1788~1856))아정 이덕무의 손자이다. 조부 아정의 가학을 이어 받아 초야에 묻혀 실학에 정진하였다.

 

이규경은 그의 나이 60에 기록한 「생활훈」生活訓에 매우 자세한데, 그를 포함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원하던 처사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먼저 마음을 수양하고 몸을 단련하면서 세상의 명예를 구하지 않는 삶을 강조하였다. 특히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몸을 수양하는 양생론은 조선시대 어느 학자의 그것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그는 1년 사계절에 맞추어 살아가는 수양의 방법을 기술한 후 하루의 일과를 소개하였다.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풍류라면 가히 호사라 할만하다.

 

봄철 : 새벽에 일어나 말린 매화를 끓여 차를 만들고, 하인에게 일과를 부여하여 주위를 청소하고 계단의 이끼를 살피게 한다. 사시巳時에 장미로薔薇露로 손을 씻고 옥유향 玉蕤香을 피운 다음, 적문赤文, 녹자錄字의 글을 읽는다. 정오에 죽순과 고사리를 따고 호마胡麻를 볶으며, 샘물을 길어다가 새로 난 차를 달인다. 오후에는 관단마款段馬(걸음이 느린 조랑말)에 올라 전수편 剪水鞭을 들고 나가서 친구와 함께 거나하게 취한 뒤 꾀꼬리 소리를 듣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앞에 앉아 오색전 五色箋을 펼쳐놓고 문원 文苑의 좋은 시구들을 쓴다. 땅거미가 지면 지름길로 돌아와서 낙화를 주워 물고기에게 먹인다.

 

여름 : 새벽에 일어나 기하芰荷(마름과 연) 잎을 오려 옷을 만들고, 꽃나무 옆에 앉아 이슬을 받아 마셔 폐장 肺臟을 윤활시킨다. 사시巳時에 도화圖畫와 법첩法帖을 감상하다가 못가에 나가 구경한다. 정오에 두건을 벗어 석벽에 걸고 평상에 앉아서 『제해기』齊諧記와 『산해경』山海經의 기사를 이야기하다가 피로해지면 좌궁침左宮枕을 베고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노닌다. 오후에는 야자배椰子盃(야자의 열매를 쪼개어 은이나 백철을 붙여 만든 잔)에 오이와 오얏을 띄어놓고 연꽃을 찧어 빛은 벽방주碧芳酒를 마신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주사론천 硃砂溫泉(주사가 포함된 온천)에서 목욕한 뒤 조각배를 타고 나가 묵은 덩굴풀이 깔린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다 땅거미가 지면 탁관籜冠(죽순 껍질로 만든 관), 포선蒲扇(부들로 만든 부채) 차림으로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화운火雲(여름에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리려고 할 때의 구름)의 변화를 참관한다.

 

가을철 : 새벽에 일어나 휘장을 내린 뒤에 장서藏書의 표지를 점검하고 주사硃砂를 이슬에 개어 문자文字를 점감한다. 사시巳時에 거문고를 뜯고 학을 길들이며, 금석金石이나 도기로 만든 그릇을 관상한다. 정오에는 연방蓮房(연밥이 들어 있는 송이) 위의 이슬로 벼루를 씻고, 다구茶具를 정리하여 오죽梧竹을 씻는다. 오후에 백접리白接䍦(두건의 일종)와 은사삼隱士衫차림으로 단풍잎 지는 것을 관망하다가 시구를 얻어 잎 위에 쓴다. 신시申時에 게蟹의 집게발과 농어회를 안주 삼고 해천라海川螺(소라껍질)에 새로 빛은 술을 부어 취한 뒤에 통소 두어 곡조를 분다. 땅거미가 지면 사립문에 기대어 초부樵夫, 목동牧童의 노래를 들으며, 반월향半月香을 피워놓고 국화를 가꾼다.

 

겨울철 : 새벽에 일어나 순료醇醪(좋은 막걸리)를 마시고 양지쪽에 앉아 머리를 빗는다. 사시巳時에 전방석을 깔고 숯(鳥薪)을 구입한 뒤, 명사들을 모아 흑금사黑金社(추위를 막기 위한 임시 거처)를 만든다. 정오에 붓을 들고 묵은 원고를 정리하다가 해그림자가 층계에서 옮겨가는 것을 보아 발을 씻는다. 오후에는 도통롱都統籠을 메고 묵은 소나무와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사이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건명建茗(건안建安에서 생산되는 차)을 달인다. 신시申時에 베옷과 가죽 모자 차림으로 시풍등嘶風鐙에 올라 발 저는 나귀(蹇驢)를 채찍질하여 설매雪梅의 소식을 탐방한다. 땅거미가 지면 화롯가에 다가앉아 토란을 구워 먹으면서 무념무생無念無生의 미묘한 게송偈頌을 설說하고 검술劍術을 담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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