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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거제도와 지역안배

 

 

조선의 과거제도와 지역안배

 

그림은 개판이 된 조선 후기의 과거장 풍속도 입니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오늘날까지 출세지향의 학문풍토와 시험만능주의, 학연과 학벌사회의 폐단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가문과 배경보다는 실력중심의 관리임용제도였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제도였다고 생각된다. 2품 이상의 고위관료 자제에게는 음서가 허용되었으나, 대놓고 개무시하기도 하고, 매우 쪽팔려 했다고 하며, 고위직 진출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조선 말기에 가면 이 또한 개판이 되긴 하지만.)

 

동시대 서양사회는 아예 이런 제도를 생각지도 못하던 단계였고, 중국에서 기원하여 한국과 베트남에 확산된 제도이다. 일본도 헤이안시대에 잠시 귀족가문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으나, 무사계급이 등장하면서 사라진다. 과거 제도는 중국 수나라 문제가 만들었던 선거제에서 유래한다. 이는 당 때 과거제로 이름이 바뀌었고, 송을 거치면서 정착되었다. 당은 유례없이 개방적인 왕조여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빈공과를 시행하였다. 신라3최로 일컬어진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는 모두 당나라 빈공과 급제자 출신이다.(, 우리 경주 최씨의 조상이지 말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 광종 때, 후주의 쌍기를 영입하면서 과거제를 시행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역균형과 능력주의가 매우 절묘하게 섞인 합리적인 제도로 발전한다. 원칙적으로는(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조선 전기에는 반상의 차별이 없어, 모든 양인이 응시가 가능했다고 한다. 분야는 문과, 무과, 잡과로 구분한다.

 

문과를 중심으로 조선 중기 과거제도를 살펴보면, 시험은 크게 5단계.

 

소과 초시, 초시 타이틀 획득.

 

소과 복시, 한성 200, 향시 500명 선발. 성균관 입학과 대과 응시자격을 준다. 생원과는 사서오경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고, 진사과는 시나 부로 문예창작 능력을 테스트하여, 각각 생원이나 진사라는 칭호가 붙여진다.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경전에 대한 암기보다 문장능력이 더욱 중시되었고, 이 때문에 생원보다 진사가 존경받게 되었다. 생원/진사 타이틀을 따면 그 아래로 4대가 양반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적어도 4대에 한명은 합격해야 한다.

 

대과 초시, 지역 안배 전국 240명 선발.

지역 안배 방식은 관시, 한성시, 향시에 각각 합격인원의 제한을 두었다.

관시는 성균관 유생 중 우수한 사람이 응시하여 50명을 선발.

한성시는 서울에서 40, 향시는 지방에서 150명을 선발하였다.

인구비례에 따라 경기도 20, 강원도 15, 황해도 10, 충청도 25, 경상도 30, 전라도 25, 평안도 15, 함경도 10명이었다.

 

대과 복시, 대과 초시 합격자 중 33명 선발, 관직 진출 확정.

 

전시, 왕이 친람하는 전시에서는 복시 합격자들이 대책에 대해 써 올렸는데, 그것은 현실문제나 시국문제에 대한 국왕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왕의 심중을 제대로 헤아리면, 장원이었던 셈이다. 최종 순위를 가려. 갑과 3(장원, 방안, 탐화), 을과 7, 병과 23인으로 나눈다. 성적에 따라, 최상 종6품에서 최하 종9품 관직에 등용하며, 현직관리는 1~4 단계 승진한다.

 

이 모든 시험을 다 합치면 9회가 되는데, 아홉 번을 모두 장원급제한 사람이 바로 율곡 이이,‘구도장원공이라 칭송 되었다.

 

원칙적 응시 결격사유는

역적/탐관의 죄를 범한 자의 아들 (손자는 언급이 없다.),

재가(再嫁) 또는 그 밖의 부도덕한 행실을 저지른 부녀자의 아들이나 손자,

서얼(庶孽)의 자손 (잡과 응시 가능).

 

후기로 갈수록 응시에 제한을 두는 사유가 늘어나는데, 점점 반상의 신분차별과 서원(사학)을 축으로 한 기득권 집단 중심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인다.

 

1.도목(都目)에 없는 자임진왜란 이후 쇠퇴해진 관학의 재건을 위하여 1651(효종 2) 도목제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서울과 지방의 유생을 서원(사학) 또는 향교에 분속시켜 면역의 특전을 주는 한편, 청금록(靑衿錄)이나 유안(儒案)에 들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과거응시를 금하는 것이었다.

 

2.유벌(儒罰)을 받은 자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유생에 대하여 조정에서 과거응시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성균관 유생들이 자치기구인 재회(齋會)를 열어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자에게 제적 등의 유벌을 주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유벌을 받은 자는 그것이 풀리기 전까지 과거응시에 제약을 받았다.

 

3. 기복(朞服) 이상의 상을 당한 자부모의 상을 당하거나, 승중손(承重孫)이 조부모의 상을 당한 자는 3년상이 끝날 때까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초시 합격자가 상을 당하였을 경우 거주지 수령의 공문을 받아 예조에 제출하면 복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었는데, 이를 진시(陳試)라 하였다.

 

4.현직관료와 종친(宗親)국초 소과는 참하관 이하, 대과는 당하관 이하에게 응시 자격을 주었으나, 1472(성종 3) 이후부터 소과는 정5품 통덕랑(通德郎) 이하, 대과는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하에게 응시 자격을 주었다. 그리고 종친에게도 국초 과거응시를 허용하였으나, 1471년부터는 금하였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보면 시험에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것 같지만, 보통은 30대 중반 정도면 합격을 했다. 또 젊은 나이에 합격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최연소 장원급제 기록은 17세이며, 최연소 합격자 기록은 고종 때 13세로 되어 있다. 고종 때 지나치게 많이 뽑았던 점을 고려해 제외한다면 최연소 합격자 기록은 15세다.

 

대과 응시 지역배정을 보면, 지역차별이 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초선 초기 경국대전에 서북인(평안도, 함경도)에 대한 차별조항이 있었다고 하나, 조선 후기의 과거급제자를 보면 상당히 희석되었다.  고위관직에 호남출신이나 호남본관인 자도 상당한 것을 보면, 고려 이래로 지역차별이극심했다는 논거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사안이다.

 

서울대의 연구에 따르면 순조 시기의 과거합격자 중에 평민은 54%, 헌종조는 50.9% , 철종조에는 48.1%에 달했다. 고종 시기에는 60%가 평민이었다. 평민 비율이 제일 낮았던 시기는 연산군과 숙종 시절이지만 그때도 30% 정도는 평민이었다.(4대 이상 벼슬을 못하여, 평민신분으로 격하된 양반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과거 합격자가 많은 가문은 명문가로 칭송받았다. 전주 이씨가 가장 많은 문과 합격자(866)를 냈고, 그 다음으로 안동 권씨(367), 파평 윤씨(346), 남양 홍씨(331), 안동 김씨(320) 순이다. 덕수 이씨인 이순신의 후손들은 문과에서는 단 한 명밖에 없었지만, 대신 무과에서 267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흠, 신라와 고려 때 잘 나가던 경주 최씨는 조선시대에는 거의 힘을 못썼다.)

 

 

부록-[음서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관료제가 보다 세련되어지고 과거제도가 발전하면서 음서로 진출하는 것은 쪽팔리게 여기게 되었다. 당장 문음이라고 명칭도 바뀌었을 뿐더러,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의 관료 자녀만 음서가 가능했으며, 그나마 음서로 관직에 들어온 자녀들은 그 사실을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쪽팔리게 여기고, 과거로 들어온 관료들은 음서직을 개무시하였다.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한명회는 할아버지가 조선국호를 받아온 한상질에 작은할아버지는 개국 3등공신인 명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음서로 등용되자 개성에서 경덕궁직이라는 말단관직을 전전했고 개성 관료사이에서도 개무시를 당했다. 관직에 들어오고 나서도 다시 공부해서 과거를 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어차피 조선시대에는 음서로 관직에 들어온 자는 높은 품계로 승진이 불가능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다시 분위기가 역행하여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이 음서로 관직에 나가려는 경향이 서서히 나타나게 되지만 이 시기에조차 고위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과거였으며, 바로 이것이 조선 말기에 과거제의 폐단이 대두되며 과거 시험이 막장이 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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