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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러일전쟁과 정로환

러일전쟁과 정로환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과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일본군의 기습선제공격으로 1904년에 벌인 전쟁이다. 일본이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군을 제압함으로써,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우리민족의 고난이 가중된 것도, 독도 영유권 논쟁의 발단이 된 것도 이 전쟁의 결과이다.

 

[뤼순항 전투와 봉천 대회전]

 

뤼순 공략을 맡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제3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203고지 공격으로 많은 손실을 보았지만 19051월 드디어 공략에 성공하였다.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과 오야마 이와오[大山嚴]가 이끄는 일본군 25만은 3월에 펑텐(奉天, 瀋陽)에서 회전(會戰), 러시아군이 패퇴하였으나 일본군도 사상자가 7만에 이르는 큰 손실을 보았다. 총병력 25만 중 7만을 잃었으니, 일본군의 타격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대한해협(쓰사마) 해전]

 

한편 러시아는 육전(陸戰)에서의 패배를 만회하려고 당시 세계 3위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발틱함대를 보내 527,28일 대한해협에서 해전을 전개하였으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함대에 격파되어 전멸하였다.

 

로제스트벤스키의 발틱함대는 전함 8, 순양함 8, 구축함 9대였는데,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장장 7개월의 항해를 거쳐 일본 서안에 도달한다. 그의 함대는 전함 4, 순양함 8, 구축함 21, 어뢰정 60대로 이루어진 도고의 함대와 만났다-모두 러시아 것보다 신식이었다.

 

도고는 혼슈와 쓰시마 섬 사이에서 러시아 함대에 매복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 해군 1만 명 가량이 사망했다. 러시아 측에서는 순양함 1대과 구축함 2대가 살아남았다. 일본 측의 피해는 어뢰정 3대와 군인 1천 명에 불과했다.

 

 

[노기 마레스케 (乃木希典)]

 

일본에서는 러일전쟁의 군신으로 추앙되고 있지만, 사실 그의 전술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수많은 일본 젊은이가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다 희생되었다.

 

여순 요새는 콘크리트 방벽과 기관총, 철조망, 참호로 무장하고 있었다. 노기는 병사들에게 포화를 뚫고 돌격하여, 총검으로 기관총진지를 무력화 시키자는 무식한 작전을 하달했는데, 그의 명령에 따라 세 차례 감행된 총공격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실패했다.

계속된 포위 공격 끝에 여순 요새는 결국 19051월에 방어선이 뚫려 함락되었다. 이후 노기 휘하의 제3군은 19053월에 벌어진 러일전쟁의 최후이자 최대 규모의 지상전인 봉천회전에도 참가하여 일본군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정로환]

 

러일 전쟁이 한창일 무렵, 만주로 출정한 일본군들이 며칠 만에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일본군은 사망원인이 만주의 수질이 나빠서 생긴 설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일왕은 '하루 빨리 배탈설사를 멈추게 하는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이 보국하는 길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며 전국에 칙명(勅命)을 내렸다.

 

일왕의 한마디에 당시 일본 제약사들은 앞 다퉈 약을 만들어 바쳤는데 그 종류가 무려 수천가지에 달했다. 그중 다이코신약에서 만든 약은 그 효능이 매우 우수해 이 약을 복용한 만주의 일본 군사들은 그 이후 더 이상 배탈설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왕은 이후 이 약의 이름을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치는데 공이 큰 약 이었다고 해서 칠정()과 러시아를 의미하는 일본식 발음 이슬로()자를 사용해 [정로환(征露丸)]이라 지었다.

 

한국에는 동성제약은 창업주 이선규 회장이 일본에서 제제기술을 도입, 72년 봄 국내사로는 처음 정로환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신 이름은 일본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 정로환(正露丸)이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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