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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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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유신교육 3 (고딩편) 1980년 봄, 청석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해 봄, 광주에서 5.18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청주사대(현 서원대) 학생들이 학내문제로 데모를 하긴 했으나, 보도가 통제되니 청주는 평온했다. 인하대 다니는 하숙집 둘째 아들이 학교가 쉰다며 집에 내려와 있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다만, 광주의 소식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터무니없는 루머가 나돌았으니, ‘어떤 놈이 형수와 놀아나다가 둘이 몸이 붙어서 남궁외과병원에 실려 갔다더라’ 식의 정보기관에 의해 유포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소문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 장교 출신인 윤리 교사는 수업시간에 ‘황강에서 북악까지’ 라는 제목의 전두환 장군의 위대한 스토리를 소개했다. 한문 담당은 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데모를 하는 건 상스러운 짓이며,..
나와 유신교육 2 (중딩편) 중학생 시절, 유신교육의 하이라이트는 박근혜와 관계됩니다. (마지막 부분 필독!) 행복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다. 중학교 진학은 지옥문을 들어서는 거였다. 중학교 교사들은 모든 것을 매질로 해결했다. 수업자세, 숙제와 시험성적, 수업준비물, 청소, 두발과 복장, 통학용 자전거 점검까지 말로 하는 게 하나도 없이 두들겨 패고 보자는 식이었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교사의 매질에 저항하거나 심하면 맞장을 뜨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 매질이 덜 했지만, 중학생은 적당한 맷집에 교사에게 반항할 정도도 아니었으니, 마음껏 두들겨 팬 것 같다. 게다가, 주먹 좀 쓰는 3학년 학생들에게 ‘선도부’라는 완장을 채워 규율지도를 맡겼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교사는 네 명, 하나는 1학년 때 미술, 준비물 검사해..
나와 유신교육 1 (초딩편) 나의 학교생활은 71년 군사정권 하에서 시작하여 87년 5공화국의 종말과 더불어 끝난다. 17년 동안 군사정권의 전체주의 교육과 군(방위)생활을 거치며 뼛속 깊이 세뇌 당했으나, 다행히 대학시절 좋은 동지들을 만나 내 영혼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문득 문득 그 잔재가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1. 전체주의 훈육은 교사의 매질로부터 1학년 때, 담임은 술 좋아하고 성질머리가 개떡 같아 그 조그만 아이들을 개 패듯 하던 박** 선생. 특히, 방앗간 벨트(피대)를 잘라서 만든 슬리퍼를 벗어서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때렸던 공포의 존재였다. 이런 매질이 당연한 훈육으로 인정되던 시기여서 교장도 학부모도 여간해선 제재를 가하거나, 항의를 하는 법이 없었다. 국민학교 교사들은 교실에서 분실물 사고가 발생..
광해군의 두 얼굴 광해군의 두 얼굴 2016년 7월 12일 며칠 전 케이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무려 1962년에 제작된 ‘인목대비’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내용과 시각에 대한 설명은 출연진으로 간단히 정리가 되더군요. 광해군 역에 ‘허장강’, 능양군(인조) 역에 ‘신영균’, 인목대비 역에 ‘조미령’, 이 정도면 내용은 설명이 필요 없을 듯. 몇 년 전에 이병헌이 광해군 역으로 열연한 영화, 왕이 된 남자 광해의 인기에 편승하여 대중매체는 물론 학계에서도 광해군 시대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고, 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재조명이 필요한 역사인물 1위로 광해군이 선정되었다고도 합니다. 조선시대 내내 폭군으로 평가되었던 광해군을 최초로 재평가한 인물이 일제 강점기 만선사관의 주..
아침풍경 새벽이면 산들이 먼저 깨어났다. 먼 산은 흐릿하게, 가까운 산은 또렷하게 새벽을 맞았다. 푸른 강물이 기지개를 켜며 물안개를 피워올리면, 물가에 서있는 미루나무 새순들은 아침 단장으로 분주했다. 밤새 울던 여울물은 다소곳이 오랑개꽃들을 피워 냈으며, 얕은 개울과 느린 강물이 만나는 합수머리 자락에 펼쳐진 초록숲에서는 새들이 분주히 날아 올랐다. 사랑방 아궁이에서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타닥타닥 타들어갔고 무쇠 가마솥에서 쇠죽 끓는 소리 틈새로 아버지의 카랑카랑한 재채기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찬 우물을 길어 감은 머리를 갈래로 땋은 누이들은 읍내 여학교 등교 준비가 분주했다. 숯불을 담은 다리미로 하얀 교폭칼라를 다림질 했고, 양은 도시락에 담긴 갖 지은 밥알들이 달착지근한 김을 올렸다. 밤새 식었던 아랫목..
사월 뒤뜰 해묵은 모란이 새순을 내밀고 뜨락 돌 틈엔 어느새 민들레 피었네. 흰 나비 한 마리 꿈결처럼 지나가는 오후 비를 머금은 바람에 나뭇잎들이 화들짝 깨어난다. 마당을 쓸고 먼 산을 본다. 사월이다. (2011년 봄)
옛집 옛집에 돌아와 텃밭을 일구네. 봄비에 한뼘, 여름볕에 두뼘 자라나는 푸성귀들 보며 '그놈들, 참 대견하다.' 하시던 어머니 그리워하네. 옛집에 돌아와 밤이면 하늘을 보네. 잔별들 쏟아질 때 아버지의 노랫소리 들리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 속에는 수심도 많다.' 옛집에 돌아와 다시 강변에 앉아 시를 읽는다네. 다시 바람을 느끼고, 다시 나를 돌아보네. (2011년 여름)
애기똥풀 내려 왔구나, 애기별 간밤 꽃샘바람에 잔별 날리더니 어두운 세상 내딛는 발걸음 헛디디지 말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이렇게 내려왔구나, 이렇게 피어났구나. (2011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