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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나와 유신교육 2 (중딩편)

중학생 시절, 유신교육의 하이라이트는 박근혜와 관계됩니다. (마지막 부분 필독!)

 

 

 

행복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다. 중학교 진학은 지옥문을 들어서는 거였다. 중학교 교사들은 모든 것을 매질로 해결했다. 수업자세, 숙제와 시험성적, 수업준비물, 청소, 두발과 복장, 통학용 자전거 점검까지 말로 하는 게 하나도 없이 두들겨 패고 보자는 식이었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교사의 매질에 저항하거나 심하면 맞장을 뜨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 매질이 덜 했지만, 중학생은 적당한 맷집에 교사에게 반항할 정도도 아니었으니, 마음껏 두들겨 팬 것 같다.

 

게다가, 주먹 좀 쓰는 3학년 학생들에게 선도부라는 완장을 채워 규율지도를 맡겼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교사는 네 명,

 

하나는 1학년 때 미술, 준비물 검사해서 아이들 두들겨 패다보면 수업이 끝났다.

 

또 한명은 2학년 때 농업, 갓 부임한 첫 수업시간에 똑바로 앉아서 주목하라고 하는 순간에 내가 교과서를 펼치고 있었는데, 지시를 어겼다고 불러내어 이른 바, ‘시범 케이스로 두들겨 맞았다. 그것도 귀때기를 회초리로 톡톡톡 수도 없이 때리는데, 그 비열함에 치가 떨린다.

 

세번째는 주성중학교 2학년 담임 궉**(특이한 성을 가졌다), 토요일 봉사활동으로 우암산 도로변 청소를 하는데, 객지에 나와 하숙을 하다 보니 연장을 구할 수 없어 그냥 갔다. 사정을 애기했으나, 어쨌든 지시위반,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피멍이 들게 얻어맞았다.

 

마지막으로 주성중학교 학생주임,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불문곡직 두들겨 팬 후, 바리깡으로 머리 한가운데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내 버렸고, 통학용 자전거 전조등이 안 들어온다고 매질을 해댔다.

 

요즘 학생인권보호가 과도하다고 옛날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가끔 보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기강은 잡히겠지만, 아이들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는 럭비부와 태권도부가 있었다. 럭비부 주장은 선도부장이자 학교 짱이었다. 신입생 교실을 돌며, 덩치 좀 있는 아이들을 거의 강압적으로 럭비부에 가입시켰는데, 탈퇴를 하려면 빳다를 곤죽이 되도록 맞아야했다. 이런 일도 학교의 묵인 하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교과과목에는 도덕 외에도 반공’(승공통일의 길)이 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역설하고,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애국심과 충효사상을 고취시키는 교육.

 

희한한 여름방학 숙제는 중학교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퇴비증산, 잡초를 베어서 한 짐씩 제출하는 거였다. 나는 농사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낫질도 젬병, 마을 친구들 도움을 받아야 했다.

 

미스터리 하나.

우리 마을에 한일합방에 항거하여 자결한 홍범식 선생(벽초 홍명희의 부친) 묘소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을 동원하여 묘역 벌초를 했다. 이 묘소에는 1950년 보도연맹 학살로 군경에 의해 살해된 홍범식 선생의 후처, 금산부인도 묻혀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어쨌든, 벽초 홍명희선생의 부친인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 참 가상하다.

 

2학년 봄, 청주로 전학(유학)을 갔다. 여기에도 포악한 교사가 즐비했다.

국사담당 불독은 칠판 판서를 첫 수업 교실에서만 한다. 아이들은 앞 수업반 아이들 공책을 빌려다 베껴 쓰게 했다. 나야 다른 반 아이들과 안면이 없어 당황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옆자리 아이가 대신 빌려다 주었다. 세상에 그 재미있는 국사과목을 그 따위로 가르치다니...

 

공업 담당은 박카스 중독이었다. 수업 전에 교탁 위에 박카스 한병을 모셔 놓아야만 수업이 진행되었다.

 

하숙집 근처에 자유극장이라는 2본 동시 상영관이 있었다. 주로 홍콩 무협영화(사망유희, 소림사 십팔동인, 소림 삼십육방 등등)를 보러 갔는데, 한번은 ‘26*365=0(유지인 주연)’이라는 제목의 성인영화를 동사상영으로 보다가, 야간 생활지도 나온 교사들을 피해 뒷문으로 도망쳤던 추억이 있다. 교사들도 참 고달펐겠다.

 

2학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 까지 반년 넘게 매스게임 연습에 동원되었다. 1979년 봄에 청주에서 개최되는 전국소년체전 행사 준비였다. 영부인 대행 역할을 하는 박근혜 큰 영애가 참관하는 중요한 행사이니, 아이들을 달달 볶았다. 연습이 고된 날이면, 자다가 다리에 쥐가 올라 고생을 했다. 매스게임의 주제는 박근혜가 주창하는 한마음 운동의 핵심, 충효예. 그녀와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그해 가을, 연합고사를 볼 무렵 박정희가 죽었다. 아이들은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수군거렸고, 김재규가 체포되고 연이어 정승화 참모총장이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발표 되었다. 전두환 합수부장에 의해 시해사건의 전모가 발표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취권'을 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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