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생활은 71년 군사정권 하에서 시작하여 87년 5공화국의 종말과 더불어 끝난다.
17년 동안 군사정권의 전체주의 교육과 군(방위)생활을 거치며 뼛속 깊이 세뇌 당했으나, 다행히 대학시절 좋은 동지들을 만나 내 영혼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문득 문득 그 잔재가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1. 전체주의 훈육은 교사의 매질로부터
1학년 때, 담임은 술 좋아하고 성질머리가 개떡 같아 그 조그만 아이들을 개 패듯 하던 박** 선생. 특히, 방앗간 벨트(피대)를 잘라서 만든 슬리퍼를 벗어서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때렸던 공포의 존재였다. 이런 매질이 당연한 훈육으로 인정되던 시기여서 교장도 학부모도 여간해선 제재를 가하거나, 항의를 하는 법이 없었다.
국민학교 교사들은 교실에서 분실물 사고가 발생하면, 장시간 단체기합으로 아이들 진을 빼놓은 후, 자수 또는 고자질을 종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2. 주요 암기사항 및 애국의식
1학년 봄 소풍, 내가 부른 노래는 ‘이승복 추모가’, ‘원수의 총칼 앞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두고 간 말, 공산당은 싫어요...’
박정희가 지은 국민교육헌장 암송에서 출발하여, 새마을 노래와 애국가 4절까지 외기, 국기에 대한 맹세 외기는 중요한 교육목표였다.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 역시 애국가 못지않게 중요한 노래로 열심히 배웠다. 심지어는 고무줄놀이 노래로 '달 달 무슨달' 곡에 맞추어 부르는 숫자송도 있었다.
1: 일하시는 대통령 2: 이 나라의 지도자 3: 3.1정신 받들어 4: 사랑하는 겨례위해 5: 5.16이룩하니6: 6대주에 빛나고7: 70년대 번영은8: 팔도강산 뻗쳤네9: 구국의 새역사는10: 10월유신 정신으로
아침과 저녁에는 국기 게양식과 강하식이 엄숙하게 치러져, 부동자세로 서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충성을 다짐했다.
3. 주번제도와 향우회 조직
고학년이 되면 순번제로 주번이라고 해서 완장을 채워주고 학교일 돌보기(심지어는 푸세식 변소 인분 푸기도 포함해서), 지각생 잡기 등 학생규율관리, 국기게양과 하강식을 주관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토끼와 염소를 길렀는데, 고학년 주번들의 주요일과가 얘네 들 돌보기였다.
향우회는 작은 마을 단위로 조직해서 6학년 남학생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일요일이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마을 청소, 도랑치기, 잡초제거 같은 일을 해야 했다.
4. 학예발표회
해마다 6월 경 개교기념일에 맞추어 학예발표회를 했다. 나는 주로 구연동화와 웅변, 연극을 맡았다.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의 학예발표회에도 유신의 촉수가 드리워졌다. ‘소년가장’은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내용이었고, 웅변대회의 단골 소재는 ‘반공 어린이 이승복’ 이었다. 고학년들은 ‘유신의 노래’를 합창곡으로 부르기도 했으니.
5. 희한한 과제물
여름방학이면 염소와 토끼 들 먹일 녹사료(아카시아 잎을 그늘에 말린 것) 한 포대씩과 잔디씨앗 편지봉투로 한 봉씩 채취하기가 과제로 나왔다. 추수철이면 이삭줍기 숙제도 있어서 한 됫박씩 할당량을 제출해야 했다. 그 외에도 고철이며 폐지 모으기 행사도 매월 있었다.
6. 새마을운동과 식량자급
쌀 자급자족이 당시 유신정권의 중요한 정책 목표여서, 농촌에는 맛은 떨어지지만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강제로 심게 했고, 추수철이면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도 펼쳐졌다. 가정에서 술을 담그는 것도 금지되어서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검사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도 매주 하루는 혼분식의 날로 지정되어서, 그날만큼은 흰쌀밥 도시락을 금지했다. 더불어 혼분식의 좋은 점을 가르쳤다. 이노래 기억하실런지?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보리밥 머근 사람 신체 건강해.'
7. 에너지 절약
목조건물에 마룻바닥이다 보니, 대청소를 할 때면 참기름이나 양초를 가져다 교실과 복도 바닥을 닦았다. 겨울에는 무척 추웠다. 에너지가 부족하던 시절이니 난로를 피우는데도 적정기온 이하로 날씨가 추워져야 난방을 했다. 장작난로를 피울 량이면 연기 때문에 창문을 온통 다 열어젖혀야 했고, 온기도 충분하지 않았다. 소사 아저씨는 장작 패는 일이 큰일 이었다. 조개탄이 공급된 건 고학년 때나 되어서였다.
8. 반공영화
70년대에는 여름밤이면 군청에서 영사기와 스크린을 가지고 마을을 돌며 공익영화를 순회 상영했다. 학교 운동장이나 큰 동네 공회당 앞 공터에서 일년에 한번 정도 상영하는 날이면,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가 영화를 봤다.
흑백으로 촬영한 반공영화가 주를 이루었는데,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공비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되는 이승복 어린이, 한국전쟁 속의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 이야기, 양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전쟁 속에 헤어진 전쟁고아가 해외입양을 갔다가 형제자매를 찾아오는 이야기, 눈길에서 아버지를 구하려다 죽은 어린 아들의 실화, 섬마을 아이들이 농구로 전국대회에 진출하는 실화 등이 기억난다.
9. 반공소설, 만화와 드라마
아동도서와 만화에도 반공은 중요소재. 아동소설로는 구월산 반공유격대가 , 만화로는 부지기 수인데 태권소년이 간첩을 때려잡는 다든지, 수상한 사람을 식별하는 요령을 만화로 홍보하기도 했다. 드라마로는 KBS의 '전우'(나시찬, 이일웅 주연)와 MBC에서 방영하는 '113수사본부'(전운, 조경환 등 출연)가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매년 '모의간첩훈련'이라는 게 있어서, 수상한 낯선 사람을 신고하면 학용품을 상품으로 주는 황당무계한 행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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