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봄, 청석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해 봄, 광주에서 5.18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청주사대(현 서원대) 학생들이 학내문제로 데모를 하긴 했으나, 보도가 통제되니 청주는 평온했다. 인하대 다니는 하숙집 둘째 아들이 학교가 쉰다며 집에 내려와 있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다만, 광주의 소식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터무니없는 루머가 나돌았으니, ‘어떤 놈이 형수와 놀아나다가 둘이 몸이 붙어서 남궁외과병원에 실려 갔다더라’ 식의 정보기관에 의해 유포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소문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
장교 출신인 윤리 교사는 수업시간에 ‘황강에서 북악까지’ 라는 제목의 전두환 장군의 위대한 스토리를 소개했다. 한문 담당은 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데모를 하는 건 상스러운 짓이며, 이게 다 청주사대에 서울출신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거라며 혀를 찼다.
독어담당으로 서울에서 여대를 갓 졸업한 장**선생이 부임했는데, 본인은 별 내색을 안했으나, 한문 담당이든가 한 선생이 위대한 창랑 장택상의 손녀가 부임했다고 입에 침을 튀겼다. 그 때는 장택상이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다.
박정희가 죽고, 유신정권은 막을 내렸으나, 고교에서의 유신교육은 더 기승을 부렸다. 교련이 정규과목이어서, 예비역 장교인 교련 담당은 늘 군복을 착용했고 군사교육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목총을 둘러메고 제식훈련이며, 총검술, 각개전투, 화생방 훈련 등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심지어, 체력장에서 공 던지기 대신 수류탄 던지기를 했다.
학생조직은 군사조직 편제에 따라,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이 있었고, 월요일 조회는 교련복을 착용하고 발목에는 각반을 둘렸으며, 목총을 들고 열병과 분열을 했다. 소풍은 행군으로 대체되어 먼 거리를 하루 종일 걷는 행사였다. 몇몇 아이들은 수통에 물 대신 ‘캡틴큐’라는 싸구려 럼주를 채워 넣고 몰래 마시다, 학주에게 걸려 매타작을 당하기도 했다.
2학년 담임은 영어담당 신** 선생, 당시로서는 특별한 재능인 영어회화를 할 줄 아는 분이었는데, 카투사에서 복무하면서 익혔다고 한다. 자주 자랑삼아 카투사 복무시절 얘기를 했다. 신선생은 수학여행을 앞두고는 여학생들, 특히 광주 조대부고 여자애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지역차별의식을 주입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지역차별의식은 충청도에도 공공연하게 유포되었다.
학교 안팎에서는 학생 폭력서클의 위세가 대단했다. 어둠의 세계에 입문한 아이들 사이에서는 ‘트웬티’라는 이름의 범 청주 연합폭력서클이 위세를 떨쳤다. 툭하면 다툼이 벌어졌는데, 재크 나이프, 대못을 박은 각목, 오토바이 체인 같은 무시무시한 흉기들도 동원되었다. 패싸움을 하다 폭행치사사건으로 감옥에 가거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아이도 있었다.
나는 학생폭력써클의 문제 역시, 당시의 사회분위기와 유신교육이 만들어 낸 병폐라고 생각한다.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는 명작이다.
'생각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안언론, 팟캐스트의 세계 (0) | 2016.08.10 |
---|---|
유교문화의 빛과 그림자 (0) | 2016.07.25 |
나와 유신교육 2 (중딩편) (0) | 2016.07.24 |
나와 유신교육 1 (초딩편) (0) | 2016.07.24 |
광해군의 두 얼굴 (0) | 2016.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