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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유교문화의 빛과 그림자

유교문화의 빛과 그림자

 

2016710

나는 한국의 경제성장, 나아가 한국인의 역동성과 민주화의 근원을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한다. 하나를 더 보태자면,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 환경. 박정희의 위대한 영도력과 1세대 재벌 창업주들의 뛰어난 안목이 결정적인 요소인양 숭앙하는 해괴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말이다.

 

기후의 영향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동남아 여행을 가서 드는 첫 번째 느낌은 사람들이 참 유순하고 느리다.’라는 것, 좀 더 곱씹어 생각해보면 이 날씨에 우리처럼 무지막지하게 일하다가는 금세 지쳐 죽겠다는 것, 우리나라처럼 혹독한 겨울이 없으니,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살만 하겠다는 것이다. 환경의 차이를 무시하고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 식의 절박함, ‘빨리 빨리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고.

 

유교적 전통의 요소를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본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타협적 신앙, 출세와 신분상승 도구로서의 학문, 가부장적 조직문화.

 

조선 성리학의 유별난 배타성과 당파성이 한국인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타협적 신봉으로 이어진다고 생각된다. 성리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여, 이단시하던 조선 유학계는 심지어 도가와 불가에 기울었던 화담 서경덕과 율곡 이이 조차도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당파성의 폐해가 오죽했으면, 흥선대원권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정책이 서원혁파였으니.

 

수많은 순교자를 낳은 조선 후기의 자생적 천주교와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 문화.

일제 강점기 중국인들을 놀라게 한 (그들 문화에서는 나올 수 없는) 항일투쟁.

해방 정국에서의 좌우대립과 빨치산 투쟁.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자신의 이념을 버리지 않는 비전향 장기수들.

내가 과문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이와 같이 치열한 사상투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전통의 토양에서 민주화 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에서 뛰어난 이론가와 투사들이 나타났고 후발국가들의 모범이 될 만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락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높은 교육열과 낮은 문맹률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또 다른 동력이다.

 

조선 전기의 과거제도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모든 양인에게 문호가 개방된 동시대의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선진적인 관리등용제도였다. 이후 훈구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퇴색하고, 조선 중기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반상의 차별이 발생하면서 양반계급의 전유물로 전락하긴 하지만,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조선을 지탱하는 중요한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분의 속박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서 학문은 그늘에서 펜대 굴리며 사는 민중의 꿈을 이루어주는 수단이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 민족에게 학업은 본질적으로 신분상승의 도구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날의 대학 역시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디딤돌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열의 결과로 한국은 질 좋은 인력을 풍부하게 확보하게 되었으며, 민주적 의식을 갖춘 지식인들이 배출하였다.

 

가부장적 문화는 군사문화와 결합하여,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냈다. 정당, 관료사회, 법조계는 물론 기업조직과 사적인 동호회조차 이러한 조직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다.

 

한편, 국가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규율에 대한 복종은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충성심은 애국애족에서 나아가 지식인들에게 핍박받는 민중의 삶을 살피게 하는 도덕적 기준으로 진화하게 된다. 근래의 한류문화 역시 철저하게 훈련하고 관리하는 한국적 기획시스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세상사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많이 나온다.

이승만 정권이 도입한 서양식 교육제도는 4.19혁명을 낳았고,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경제적 풍요는 대학생들에게 이웃과 사회를 걱정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 876월 항쟁을 배태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무릇 세상의 일들에는 양지와 그늘이 있기 마련, 편협한 사고에 갖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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