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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대중음악

이소룡에서 견자단까지

이소룡에서 견자단까지

 

내가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1973, 초등 3학년 때였다. 어느 여름 밤, 옆 동네 사촌형님들을 따라 십리 길을 걸어 읍내 극장에 갔었다. 그때 세상에 나와 처음 본 영화가 흑연비수’, 홍콩 무협영화였다. 무협영화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특별한 행운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시골에서 영화를 보는 기회는 마을 공회당 앞에서 일년에 한번 상영하는 반공영화가 전부였다. 다행히, 4학년 무렵부터는 집에 TV가 생기긴 했지만. (이런 연유로 70년대 초반의 검객영화들과 왕우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다시 영화를 접하게 된 건, 1978년 중학교 2학년 때 청주에서 하숙을 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학생들에게 극장출입이 허용되는 날은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하는 날 뿐이었고, 야간에 극장에 가는 것은 규율위반에 해당했다. 그렇지만, 그게 막는다고 될 일인가, 중학생들에게 최고인기 장르였던 무술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야간 생활지도 순시를 하는 교사들의 눈을 피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떻게든 영화를 보러갔다.

 

 

 

1978, 이소룡은 이미 작고하여 그의 전설은 출연작 네 편과 함께 신기루처럼 떠돌고 있었다. 극장가에서는 꿩대신 닭, 여소룡, 거룡, 당룡 등 이소룡의 이미지를 차용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그저 그런 무술영화들이 명맥을 이어가던 때, 소림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소림사 십팔동인’, ‘소림36등이 그것이다. ‘소림 36의 주연배우 유가휘는 얼마 전 쿠앤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에 등장하여 반가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이소룡의 미완성 유작, ‘사망유희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어 개봉한 것. 대역으로는 한국배우 당룡 (唐龍)’ (본명 김태정)이 무술 씬을 연기했고, NBA LA 레이커스 소속의 농구 선수, 카림 압둘 자바가 극의 종반부 주인공과 결투를 벌이는 상대로 등장한 점이 이색적이다. 그는 실제 이소룡의 절권도 제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은 너도나도 쌍절곤을 돌리는 연습에 매진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처럼)

 

[李小龍의 영화 다섯 편]

 

唐山大兄 (당산대형) -羅維 (라유) 1971

精武門 (정무문) -羅維 (라유) 1972

猛龍過江 (맹룡과강) -李小龍 (이소룡) 1972

龍爭虎鬪 (용쟁호투) -高洛斯 (고락사) 1973

死亡遊戱 (사망유희) -高洛斯 (고락사)/洪金寶 (홍금보) 1978

 

 

이듬해, 새로운 스타가 등장한다. 성룡(재키 챈)이다. 1979취권(醉拳)’은 공전의 히트를 하고, 이에 고무되어 취권보다 먼저 제작되었던 사형도수가 연이어 개봉한다. 이때부터 홍콩무협은 정통무협에서 벗어나, 기예에 가까운 무술동작과 희극적 요소가 결합된 형태로 변형된다. (성룡은 사실 정통무예가가 아니라 기예학교 출신이다.) 귀타귀(鬼打鬼)의 흥행 이후엔 강시를 소재로 한 아류작들도 넘쳐나고.

 

醉拳 (취권) -袁和平 (원화평) 1978

鬼打鬼 (귀타귀) -洪金寶 (홍금보) 1980

少林寺 (소림사) -張鑫炎 (장흠염) 1982

 

 

80년대 중반, 홍콩영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성룡표 영화는 폴리스 스토리로 정점을 찍고, 홍콩 느와르가 일세를 풍미한다.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 유덕화, 이수현 등이 최고의 스타로 활약한다.

 

 

이때 홀연 등장한 것이, ‘천녀유혼 (天女幽魂)’. 무협과 중국적 판타지의 절묘한 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유형의 영화이다. 그 시절의 왕조현은 정말 예뻤다.

 

警察故事 (폴리스 스토리) -成龍 (성룡) 1985

英雄本色 (영웅본색) -吳宇森 (오우삼) 1986

天女幽魂 (천녀유혼) -程小東 (정소동) 1987

諜血雙雄 (첩혈쌍웅) -吳宇森 (오우삼) 1989

 

 

1990년 드디어 서극의 시대가 열린다. 1983신촉산검협으로 무협판타지 장르를 개척한 서극은 소오강호동방불패로 경신술과 지공, 음공 등 무협소설 속의 무예를 멋지게 영상화 해낸다. 이어 황비홍 시리즈를 연속 히트시키며, 홍콩무협영화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이때 활약한 배우가 임청하와 이연걸. 조문탁은 중량감이 좀 떨어진다.

 

 

新蜀山劍俠(신촉산검협) -徐克(서극) 1983

笑傲江湖(소오강호) -徐克(서극) 1990

黃飛鴻(황비홍) -徐克(서극) 1991

黃飛鴻(황비홍2) -徐克(서극) 1991

東方不敗(소오강호2-동방불패) -徐克(서극) 1992

 

90년대 초반, 홍콩영화산업은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다. 1997년으로 예정된 홍콩반환을 앞두고 부유층이 대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홍콩경제와 사회 분위기가 암울하고 불안한 기류에 휩싸인다. 홍콩영화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고, 오우삼, 주윤발, 이연걸 등이 헐리웃으로 진출한다.

 

(한국개봉시 '칼') -徐克 (서극) 1995

 

 

 

홍콩무협영화의 비장한 최후를 장식하는 영화가 서극의 ’.

무슨 생각이었는지 서극은 이 작품을 통해 이제까지 자신이 보여준 무협의 세계를 일거에 부정한다. 강호에 협의(俠義)는 없으며, 무예를 단숨에 얻는 비급이나 기연(奇緣), 영단도 없다. 무예는 단아한 차림으로 신묘한 절기(絶技)를 우아하게 시전하여 적을 제압하는 멋진 일이 아니라. 단지 피투성이로 부딪치며 생사를 가르는 참혹한 싸움이라고 말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왕가위와 진가신의 영화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고, 이렇게 홍콩의 무협은 기나긴 암흑기로 접어든다. 왕가위의 동사서독 (東邪西毒)은 제목과는 달리 무협영화가 아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 (영웅문 1)의 인물 동사 황약사와 서독 구양봉의 이름만을 차용했을 뿐이다.

 

 

東邪西毒 (동사서독) -王家衛 (왕가위) 1994

重慶森林 (중경삼림) -王家衛 (왕가위) 1994

甛蜜蜜 (첨밀밀) -陳可辛 (진가신) 1996

花様年華 (화양연화) -王家衛 (왕가위) 2000

 

몰락한 홍콩무협을 헐리웃에서 되살린 작품이 2000년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연출하고 '원화평'이 도연한 와호장룡 (臥虎藏龍). 무협을 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이 걸작은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 땅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안 감독은 나중에 브로크백 마운틴과 파이 이야기라는 멋진 영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臥虎藏龍 (와호장룡, 2000) - 이안

 

오우삼은 헐리웃 영화연출에도 대략 성공하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일은 우리의 영웅 황비홍이연걸이 헐리웃 영화에서 악역이나 조연으로 빌빌거리는 대목이었다.

 

 

[2000년대의 무협영화들]

 

영웅 (2002), 연인 (2004), 황후화 (2006) - 장예모

촉산 (2001), 칠검 (2005) - 서극

무극 (2006) - 첸 카이거

엽문 트리로지( 2008 2010 2015) 견자단 주연, 엽위신 감독

일대종사 (2013) - 양조위/장쯔이 주연, 왕가위 감독

소림축구 (2002), 쿵후허슬 (2005) - 주성치

 

무협영화의 맥을 잇고 있는 마지막 주자는 견자단엽위신감독이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엽문 트릴로지를 완성하였다. 2013년에는 엽문을 주인공으로 하는 또 다른 영화 일대종사가 왕가위에 의해 만들어 졌으나, 정통 무협의 계보로 보기엔 좀 애매하다.

 

 

엽문이나 곽원갑은 물론 중국 본토 출신의 감독들에 의해 무협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무협영화는 마뜩찮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중국굴기)를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심지어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장예모의 영웅) 조차 엿보인다.

 

우아하고 낭만적인 옛날 무협영화가 그립다.

 

 

무협영화를 이끈 무예가의 계보를 정리하면는 대략 (왕우) - 이소룡 - (성룡) - 이연걸 - (조문탁) - 견자단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성룡은 정통무예가는 아니고, 홍금보나 조문탁은 중량감이 떨어진다

 

 

 

[근대 중국 대표 무예가]

 

황비홍, 곽원갑, 이서문, 엽문 이 네 사람은 근대 중국 무술계를 대표하는 실존인물이다.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이서문(1864~1934)

 

이서문은 팔극권을 익힌 풍운아로 그에게는 무술가로서 인()의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이서문은 팔극권보다는 창으로 유명했고 원래 팔극권이 창술과 가장 어울리는 무술이라고 한다.

 

황비홍(1847~1924)

 

본명은 황석상(黃錫祥), 영남무술종사이자 명의이다.

황비홍은 중국 광동성 불산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부터 무술을 배워 가기(家技)인 홍가권을 전수받았고, 또한 철교삼전인(鐡橋三傳人) 임복성을 스승으로 삼아 철선권을 습득하였고 송휘당에게서 무영각을 전수받았다.

 

황비홍은 광주 일대에 무술로 이름을 떨쳐서 이후 무술 도장을 세워서 제자를 받았다. 그는 무술 외에 의약에도 정통하여 1886년에 광동 인안리에 보지림 의관을 세우기도 하였다. 19248월 광주 상단이 폭동을 일으켜 서관 일대에 큰 불이 났는데, 그 일로 보지림이 불에 탔다. 이 사건으로 황비홍은 파산하였고, 또한 큰아들이 실업을 당하자 그로 인해 병을 얻었으며 이 해 12월에 세상을 떴다.

 

곽원갑(1868~1910)

 

중국 태생으로 정무문을 창시했다. 곽원갑은 어려서부터 병약했다고 한다. 그 부친인 곽은제는 이름을 날리던 미종권 스승이었는데 그는 곽원갑이 무술을 익히면 후에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될 것을 걱정하여 기예를 전수하지 않았으나 곽원갑은 스스로 부친이 형제들에게 기예를 전수해줄 때 눈여겨보고 집밖의 대추나무 숲에 숨어서 열심히 수련했다고 한다. 부친은 이를 보고는 생각을 바꾸어 그에게 기예를 전수했다.

 

191061일 곽원갑은 상해에서 "중국정무체조회(후에 정무체육회로 개명)"를 만든다. 곽원갑은 일생을 솔직하게 살았으나 부지불식간에 중독되어 914일 사망하니 향년 42세이다.

 

나중에 상해 정무회는 곽원갑의 동생인 원경(元卿), 아들 동각(東閣)이 물려받는다, 각지의 분회가 계속 만들어지고 십수년 후에는 중국내외에 정무 분회가 43곳에 이르고, 회원은 40만을 넘어선다.

 

그의 무술은 곽가권이라고 하는데, 당시 몇몇 고수들이 쓰는 무술 중에 미종권 혹은 미종예, 연청권이라는 무술의 일파로 성을 따서 곽가권식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곽원갑이 쓰는 기술은 미종권과는 별로 상관없는 소림무술이라고 한다.

 

이소룡의 대표작 정무문은 곽원갑의 죽음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엽문(1893~1972)

 

엽문은 불산의 명문세가의 일원이었다. 그는 7세가 되던 해에 무술을 시작하여 중일전쟁을 겪은 후, 홍콩에서 영춘권 붐을 일으켰으며, 이소룡을 제자로 들여 훗날 이소룡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절권도의 기본기와 그 사상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이다. 

 

1945년 8월 15일 중국이 해방되고 엽문은 영춘체육회를 만든다. 엽문은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영춘권을 널리 보급시켰다.

 

 

엽문과 그의 제자 이소룡

 

 

 

 

[황비홍(黃飛鴻)의 무예, 홍가권]

 

홍가권(洪家拳)은 명말청초, 복건성 남소림사의 속가 제자였던 홍희관(洪熙官)이 소림 고승 지선선사(至善禪師)로부터 소림의 무공을 전수받아 자신에 맞게 개량하고 다시 스승의 조언을 구해 창안한 권법이라고 한다.

 

홍희관은 지선선사로부터 전수받은 [소림십팔나한복호권](少林十八羅漢伏虎拳)을 개량하여 [공자복호권](工字伏虎拳)을 창안하게 되었는데, 투로의 형태가 공()자를 띠고 있어 그렇게 명명되었다. 공자복호권은 강맹함과 쾌속함을 추구하는 권법으로 홍가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권법으로 유명하다.

 

홍희관은 또한 홍가권의 실전 기술이 집약된 호학쌍형권(虎鶴雙形拳)을 창안하게 되었는데 호학쌍형권을 창안하게 된 일화는 여럿이 있다.

 

호권과 학권은 소림오권(少林五拳)에 있는 독립된 권법이었는데, 스승 지선선사와 사제 방세옥(方世玉)을 죽인 청조의 앞잡이 백미도인(白眉道人)과 그의 제자 풍도덕(馮道德)과 싸우면서 즉흥적으로 호권과 학권을 결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에 즉흥적이었지만 자신이 쓴 기법에 놀란 홍희관은 체계적인 연구를 하여 마침내 호학쌍형권을 창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홍가권은 여러 대에 거쳐 내려오면서 마침내 황비홍(黃飛鴻)에게 전수되기에 이른다. 황비홍은 그의 아버지 황기영(黃驥英)으로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온 홍가권을 익혀 15세의 나이에 도장을 운영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황기영은 광동십호(廣東十虎)의 반열에 오른 고수였다.

 

황비홍은 전수받은 홍가권을 다시 개량하여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자신이 만든 새로운 형태를 추가하였다. 이때 공자복호권과 호학쌍형권이 크게 개량된다.

 

또한 황비홍은 소걸아(蘇乞兒)로부터[취팔선권](醉八仙拳), 철교삼(鐵橋三)의 제자인 임복성(林福成)으로부터는 [철선권](鐵線拳)[비타](飛砣), 송휘당(宋輝鏜)으로부터 [무영각](無影脚)을 전수받아 홍가권에 편입시킴으로써 마침내 오늘날 홍가권의 형태를 완성시켰다.

 

현재 황비홍이 계보를 잇는 홍가문 제자들은 황비홍을 사실상 근대 홍가권의 시조로 받들고 있다. 또한 황비홍은 채리불권(蔡李佛拳), 영춘권(詠春拳) 등 남파 지역에서 성행하는 모든 권법을 누르고 홍가권을 영남 무술 중 제일무술의 반열에 올려놓아 이전보다 더욱 명성을 높게 하였으므로 오늘날의 무술가들은 황비홍을 홍가권의 일대종사(一代宗師)이자 중흥조로 받들고 있다.

 

중국에서의 홍가권의 이미지는 역사상의 영웅들, 혁명 투사들의 권법으로 인식되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쇼브라더스 영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홍가권의 인기와 인지도는 매우 높은 편이며 전란을 피해 외국으로 건너간 무술가나 화교를 호위하는 경호원들 중에 홍가권 수행자가 많아,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에서는 홍가권 도장이 다수 존재한다. 현재는 황비홍 제자들의 활약으로 세계 각지에 홍가권이 보급되고 있는데, 황비홍의 수제자인 임세영(林世英)과 황비홍의 마지막 아내인 막계란(莫桂蘭)은 홍콩에 터를 잡고 홍가권을 전수하여 대를 이어왔으며 이외 유럽 등지로 떠난 제자들도 활발하게 홍가권을 보급하였다.

 

황비홍의 대만 출신 제자 임가곤(林家坤)은 대만에 홍가권을 보급하였고, 복건성 출신의 장극치(張克治)는 임가곤으로부터 홍가권을 전수받아 대만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장극치의 제자들 중에는 화교 출신의 한국 무술가 필서신(畢庶信) 관장이 홍가권을 전수받아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에서 홍가권을 전수하고 있다.

 

 

[엽문의 무예, 영춘권]

 

영춘권(詠春拳)은 중국 남파 무술의 일종이다. 빠른 스피드와 강한 힘을 내세우고, 간결한 기술과 근접전에서의 빠르고 정확한 공방을 특징으로 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창시자 엄영춘(嚴詠春)이라는 여류 무예가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가장 유력한 설은 소림의 오매사태로부터 소림 무공을 전수받은 두부장수의 딸, 엄영춘이 소림권법을 개량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엄영춘의 부군 양박주에 의해 점차 퍼져나간 영춘권은 제자 황화보, 양이제에 의하여 광동성, 복건성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그 제자인 양찬은 '영춘권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당대의 고수로 자리하였다. 양찬은 자신의 두 아들을 포함해 단 네명의 제자만을 두었는데, 그중 한명이 진화순이었다. 영춘권 수련을 훔쳐보며 홀로 영춘권을 익힌 진화순이 길거리에서 도둑 공부한 영춘권으로 싸움을 벌이면서 양찬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느는 진화순의 기량을 두려워한 양찬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만 영춘권의 정통을 가르치고 진화순에게는 일부 기술과 자세를 빠뜨린 영춘권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엽문은 진화순의 말년에 문하에 들었고 스승이 죽은 뒤에는 사형 오중소에게 영춘권을 배우다가, 16살이 되자 학업을 위해 불산을 떠나 홍콩의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에 진학한다. 바로 이 시기, 엽문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을 얻게 된다. 여성을 괴롭히던 경찰과 싸움을 벌인 엽문은 한 노인으로부터 자세가 좋지 않아라는 지적을 듣고는 치사오(黐手, 손기술 대련)로 한수 겨루게 된다. 이 대결에서 엽문은 노인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는데, 바로 그 노인이 양찬의 큰아들로 영춘권의 정통을 물려받은 양벽이었다. 이를 계기로 엽문은 양찬이 진화순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기술까지 모두 전수받게 된다.

 

이후 중국에 공산 혁명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엽문은 홍콩으로 이주하여 홍콩을 영춘권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이소룡이 엽문의 제자로서 영춘권을 수련하였으며, 영춘권의 기법과 홍가권, 태권도, 복싱, 펜싱 등의 기법을 골고루 차용하여 절권도라는 독특한 무예를 창시하였다.

 

영춘권의 유파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크게는 중국 본토의 광주파, 홍콩으로 건너가서 세계로 퍼진 엽문파, 그리고  지선선사를 창시자로 여기는 영춘백학권(永春白鶴拳). 지선영춘권(至善永春拳)으로도 불리는 이 유파는 오키나와 가라테의 원형이 되었다. 현재 엽문파 영춘권의 계승자는 엽문의 두 아들인 엽준과 엽정 형제이다.

 

영춘권의 특징은 전통적인 중국무술과 달리 마보 자세가 협소하다는 점이다. 영춘권과 더불어 남파무술의 한 축을 이루는 홍가권과 채리불권의 경우 넓은 보법으로 공방을 전개하지만 영춘권은 이와 반대로, 좁은 보법으로 공방을 전개한다. 영춘권은 간략하면서도 위력적인 기술을 가졌으며, 기본적인 공방은 수평 최단거리이자 신체 급소가 밀집한 중심선을 기점으로 이루어진다. 근접한 상태로 다양한 상황에서 나오는 손 기술을 통해 상대의 공격을 무마시키고, 2차 공격 수단인 팔이나 손을 봉쇄하여 상대의 반격과 방어 가능성을 꺾는다. 그러고 나서 대응 수단이 없어진 상대 몸통에 곧바로 직권, 고권, 팔꿈치 등으로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으로 공방시 타격기만이 아닌 유술기가 적절히 연계되어 쓰인다.

 

영춘권은 공수합일의 권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행하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발 기술도 사용하지만, 기습적으로 상대의 노출된 하단(주로 오금)을 공격하거나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 주이다. 투로는 일반적인 중국권법에 비해 매우 간략하여 소념두, 심교, 표지의 셋뿐이다. 무기술 역시 그 가짓수가 적어서 긴 봉으로 행하는 육점반곤과 조그마한 쌍검을 다루는 팔참도가 전부이다.

 

 

[취권(醉拳)의 유래]

 

취권은 상형권(像刑拳)의 일종이며, 창시자는 '수호전''노지심'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권법은 취형(醉刑), 취태(醉態)와 공방 기법이 융합되어 형성된 권법이다. 기본 수형은 단배수(端杯手)이고 수법에는 점(), (), , (), (), (), (), (), 기본 보법에는 제보(提步), 쇄보(碎步), 개보(蓋步), 철보(撤步), 연보(), 격보(擊步), 인자보(人字步), 매화보(梅花步)등이 있고, 신법(身法)에는 영(), (), (), (), 좌요우파(左搖右擺)등을 요구하며, 운동의 특징적 표현은 동작은 높고 보()는 빠르게 쇄보(碎步)로 이동하면서, 기울어지는 신체를 고정시키며, 취한 형태(形態)를 표현해야 한다. 형에는 규칙이 없고 실제로 정해진 취보 중에서 은폐하고 있다. (), (), (), ()등의 퇴법(腿法)을 좌우로 흔들거리는 몸에 애(), (), (), ()등의 타법을 숨기고 있다.

 

 취권(醉拳)시 형()은 취하되 의()는 취하지 안으며, ()는 취하되 마음은 취하지 않아야 한다. 취한 동작으로써 상대를 혼란시키며 자기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다. 취보(醉步)는 빨라야 하나 가벼워서는 안 된다. 허리는 살아있어야 하며 몸은 움직이며 머리는 마음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취권의 기본이론상의 취의(醉意) 중 변화를 마음대로 줄 수 있어야 한다. 부딪히면서 공격하는 것이 바로 피하는 것이다. 기회를 타서 들어간다. 취권은 간(), (), (:주시하다), (:곁눈질하다), (:멍하다) 등의 많은 종류의 안법을 통하여 취태(醉態)의 표현과 배합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상대가 혼란한 틈을 이용한다. 동쪽을 교란시키고 서쪽을 공격한다. 전통의 취권 투로(套路)에는 태백취주(太白醉酒), 무송취질(武松醉跌), 노지심취타산문(魯智深醉打山門), 취팔선(醉八仙) 등이 있으며, 현대의 취권은 지당권 중 등공솔질, 와지곤전 등 동작을 흡수하여, 취형(醉形)의 표현수법이 증가되었다. 취권 투로는 일반적으로 미취(微醉:약간 취하다), 광취(狂醉:분별없이 취하다), 란취(爛醉:아주 많이 푹 취하다), 취성(醉醒:술이 깨다)등 네 등급의 상형동작(像形動作)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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