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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재미있는 연작시 두편 험프리 보가트에 빠진 사나이 장정일 이해할 수 없다. 라고 쓴다 그리고 동글동글한 자신의 필체를 바라보며 그녀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이해 할 수 없다 도대체 남편은 몇 겹의 문을 걸어잠그는 것인가 그녀는 남편이 느끼는 삶의 중심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라고 그녀는 쓴다 두 명의 남자와 싸워온 칠 년 간 그 칠 년 간 두 명의 남자와 한 지붕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 남편이 걸어잠근 방문 주위를 서성여야 했던 그녀의 난처한 결혼 생활. 아무래도 그녀는 남편의 칠 년 간을 이해할 수 없다 험프리 보가트에 빠진 사나이. 라고 그녀는 쓴다. 그리고 계속해서 쓴다 동글동글한 필체로 그녀는 쓴다. 남편은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다. 라고 저녁을 마친 남편은 영사기가 설치..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김용택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벗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뼈아픈 후회 / 황지우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 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빈집 / 기형도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러일전쟁과 정로환 러일전쟁과 정로환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과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일본군의 기습선제공격으로 1904년에 벌인 전쟁이다. 일본이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군을 제압함으로써,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우리민족의 고난이 가중된 것도, 독도 영유권 논쟁의 발단이 된 것도 이 전쟁의 결과이다. [뤼순항 전투와 봉천 대회전] 뤼순 공략을 맡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제3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203고지 공격으로 많은 손실을 보았지만 1905년 1월 드디어 공략에 성공하였다.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과 오야마 이와오[大山嚴]가 이끄는 일본군 25만은 3월에 펑텐(奉天, 瀋陽)에서 회전(會戰), 러시아군이 패퇴하였으나 일본군도 사상자가 7만에 이르는 큰 손실을 보았다. 총병력 25만 중 7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