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베이루트, 서울 아직도 베이루트의 거리에는 넝쿨장미가 피고 있을까. 철거민들의 천막에선 잡혀간 아빠를 기다리는 계집아이의 기도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난민선 주위를 떠다니던 지중해의 갈매기떼는 철거민들의 가난한 꿈속으로 떠밀려와서 어느 아파트 옥상 위에 집을 짓는가. 황해의 눈발을 휘몰아오며 북서풍은 밤새 천막 위에 울고 얼어붙은 하늘이 와르르 와르르 내려 앉고 있었다. 아침풍경 새벽이면 산들이 먼저 깨어났다. 먼 산은 흐릿하게, 가까운 산은 또렷하게 새벽을 맞았다. 푸른 강물이 기지개를 켜며 물안개를 피워올리면, 물가에 서있는 미루나무 새순들은 아침 단장으로 분주했다. 밤새 울던 여울물은 다소곳이 오랑개꽃들을 피워 냈으며, 얕은 개울과 느린 강물이 만나는 합수머리 자락에 펼쳐진 초록숲에서는 새들이 분주히 날아 올랐다. 사랑방 아궁이에서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타닥타닥 타들어갔고 무쇠 가마솥에서 쇠죽 끓는 소리 틈새로 아버지의 카랑카랑한 재채기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찬 우물을 길어 감은 머리를 갈래로 땋은 누이들은 읍내 여학교 등교 준비가 분주했다. 숯불을 담은 다리미로 하얀 교폭칼라를 다림질 했고, 양은 도시락에 담긴 갖 지은 밥알들이 달착지근한 김을 올렸다. 밤새 식었던 아랫목.. 사월 뒤뜰 해묵은 모란이 새순을 내밀고 뜨락 돌 틈엔 어느새 민들레 피었네. 흰 나비 한 마리 꿈결처럼 지나가는 오후 비를 머금은 바람에 나뭇잎들이 화들짝 깨어난다. 마당을 쓸고 먼 산을 본다. 사월이다. (2011년 봄) 옛집 옛집에 돌아와 텃밭을 일구네. 봄비에 한뼘, 여름볕에 두뼘 자라나는 푸성귀들 보며 '그놈들, 참 대견하다.' 하시던 어머니 그리워하네. 옛집에 돌아와 밤이면 하늘을 보네. 잔별들 쏟아질 때 아버지의 노랫소리 들리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 속에는 수심도 많다.' 옛집에 돌아와 다시 강변에 앉아 시를 읽는다네. 다시 바람을 느끼고, 다시 나를 돌아보네. (2011년 여름) 애기똥풀 내려 왔구나, 애기별 간밤 꽃샘바람에 잔별 날리더니 어두운 세상 내딛는 발걸음 헛디디지 말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이렇게 내려왔구나, 이렇게 피어났구나. (2011년 봄) 주성치 영화의 매력 주성치 영화의 매력 2016년 6월 24일 저는 주성치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주성치 영화의 매력은 천진난만함에 있어요. 우선,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 있지요.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자, 관객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기상천외한 허풍을 칠 테니 그냥 즐기세요.’라고. 주성치는 패러디와 슬랩스틱 코미디에 나름 티 안 나게,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페이소스를 집어 넣는데 이런 태도도 괜찮아 보입니다. 한국영화에도 이런 스타일의 감독이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창동이나 박찬욱은 좀 폼을 잡아도 될 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갖추어져 있으니 봐 주겠습니다만, 홍상수, 심지어는 김기덕까지 개뿔 별것도 없는 거 같은 데 영화에다 개똥철학을 싸질러 대니 못 봐 주겠습니다. 어제 보니, 홍상수가 스물두.. ‘엑스맨’ 이야기 ‘엑스맨’ 이야기 2016년 6월 24일 엑스맨 뉴 트롤리지의 세 번째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상영 중이군요. 헐리웃 영화산업은 2000년대 들어 ‘마블’과 ‘DC’의 히어로 무비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냉전 종식 이후 블록버스터 영화의 신선한 소재 고갈과 그래픽 기술의 혁명적 발달의 결과겠지요. 제 개인적인 영화 취향은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까지 현실의 각박한 삶을 고민하지 말자.’ 주의입니다. 하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변호인’, ‘귀향’, ‘내부자들’ 등 최근의 좋은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습니다. (참, 의식 없죠잉~) 대신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등의 SF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보고, 요즘은 작품이 뜸한 주성치 영화 매니아입니다. 또한, ‘마블’과 'DC‘의.. 고대 동북아의 유목민족 총정리 2016년 6월 20일 우리나라는 역사를 모티브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나라라는군요. 오죽하면 발해 건국자도 최수종, 고려 건국자도 최수종, 청해진 건설자도 최수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요? 집 가까운 곳에 서오능이 있는데, 거기 구석진 곳에 희빈 장씨의 무덤이 있습니다. 드라마로 가장 많이 우려먹어서 역대 장희빈 배역은 당대 최고 여배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런 역사가 요즘은 문화콘텐츠로 잘 가공되어 아시아 거의 전역에서 열풍을 일으킨다고 하니, 우리의 문화적 저력에 자긍심을 가질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과거 홍콩영화가 중국의 전통무술과 강시민담 같은 소재를 세계화시키는 것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하여, 오늘은 고대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전 1 ··· 3 4 5 6 7 다음